| 『물가에 모인 문장들』 제4회 면앙정(俛仰亭) - 풍류는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최치현 damyangjournal@daum.net |
| 2026년 09월 18일(금) 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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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은 담양 봉산면 제월리, 무등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 끝 제월봉(霽月峰)의 높은 곳에 앉아 있다. 넓은 들판에서 한 단계 우뚝 솟은 언덕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나무들이 정자 주위를 감싸고, 그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나무 아래를 지나 마루에 올라서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열린다. 들판과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산줄기가 겹겹이 물러난다. 앞의 세 정자가 물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자리였다면, 면앙정은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는 자리였다. 물소리는 멀어졌지만 대신 들판이 들어왔고, 계곡과 대숲에 가려졌던 하늘은 크게 열렸다.
송순도 이 풍경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면앙정가(俛仰亭歌)」의 첫머리에서 그는 무등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동쪽으로 달려 제월봉이 되고, 그 앞에 끝없는 들판이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정자보다 산이 어디에서 왔으며 들판이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를 노래했다. 가까운 것을 들여다보기보다 먼 것을 바라보게 하는 곳, 계곡 속으로 몸을 감춘 소쇄원과 달리 세상을 향해 시야를 열어놓은 곳. 그 자리에 면앙 송순(宋純, 1493~1582)은 정자를 세웠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들다
면앙(俛仰)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든다는 뜻이다. 송순은 이 두 글자를 자신의 호로 삼고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아래에는 땅이 있고 위에는 하늘이 있으며 그 사이에 사람이 산다. 고개를 숙이면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보고, 다시 들면 자신보다 큰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면앙정 마루에 올라서면 그 이름이 이곳의 지형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발아래에는 언덕과 나무가 있고, 고개를 들면 들판과 산과 하늘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과 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송순은 1519년 문과에 급제한 뒤 중종·인종·명종·선조 네 임금의 시대를 살았다. 홍문관과 사간원을 거쳐 대사헌과 이조참판, 한성판윤, 의정부우참찬에까지 올랐다. 벼슬길이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공격을 받아 물러났고 귀양을 가기도 했으며, 다시 불려가 조정에 서기를 반복했다. 그 긴 정치 인생의 한가운데인 1533년, 마흔한 살의 송순은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면앙정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버리지 않았다. 면앙정은 정치에서 패한 사람이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든 곳이 아니었다. 송순은 이곳에 머물다가 다시 조정으로 돌아갔고, 물러나면 고향으로 왔다. 정치와 자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두 세계 사이를 오갔다. 세상에 나아갔다가 돌아오고, 높은 곳에 올랐다가 자신을 낮추었다. 그의 삶 자체가 면앙이었다. 정치가 그를 흔들 때마다 고향에는 시를 쓸 마루가 있었고 사람을 만날 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수서원에서 만난 송순
송순이라는 이름도, 면앙정이라는 이름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송순을 한 사람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된 곳은 담양이 아니라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이었다.
언젠가 소수서원을 찾았을 때였다. 예순을 넘겨 보이는 문화해설사가 우리를 데리고 오래된 나무와 기와지붕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설명을 이어가던 그가 어느 순간 송순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십년을 경영하여」를 읊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그날 들었던 그 시조는 오래도록 내 기억을 붙들었다. 세 칸밖에 없는 작은 초가에서 한 칸은 자신이 쓰고, 한 칸은 달에게 내어주고, 나머지 한 칸마저 맑은 바람에게 맡긴다. 그러고도 강산은 너무 커서 집 안에 들일 수 없으니 아예 집 둘레에 펼쳐놓고 바라보겠다고 한다. 가진 것은 초가 세 칸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가난을 말하면서 궁색하지 않았고 자연을 노래하면서 세상을 버렸다는 느낌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기 공간을 혼자 차지하지 않는 마음이 좋았다. 달에게 한 칸을 내어주고 바람에게 또 한 칸을 내어주고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는 그 시조만 좋았다. 세월이 지나 담양의 정자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그 시조의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환벽당에서는 김윤제를 만났고, 식영정에서는 임억령을 만났으며, 소쇄원에서는 양산보를 만났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송순이라는 이름이 자꾸 나타났다. 김인후가 있었고 임억령이 있었으며, 기대승과 고경명, 정철과 임제가 있었다. 담양에서 송순의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고 나니 오래전 소수서원에서 들었던 ‘나 한 간, 달 한 간, 청풍 한 간’도 전과는 다르게 들렸다. 송순은 자기 집의 두 칸을 달과 바람에게 내어줄 수 있었던 사람이고, 면앙정에서도 마루를 혼자 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한 사람의 정자가 가단이 되다
면앙정의 진짜 풍경은 산과 들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왔다. 김인후와 임억령이 왔고, 기대승과 박순, 고경명과 정철, 임제도 송순과 이어졌다. 당대의 문인과 학자들이 면앙정을 드나들며 시를 짓고 서로의 문장을 읽었다. 한 사람이 세운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모이고 문장이 쌓이면서 한 시대의 문학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후대는 이를 ‘면앙정가단(俛仰亭歌壇)’이라 불렀다.
1550년 송순은 정치적 탄압을 받아 서천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난 뒤 1552년 면앙정을 다시 손보았고, 기대승은 「면앙정기(俛仰亭記)」를 썼으며 김인후·임억령·박순·고경명 등은 시를 남겼다. 건물을 다시 손보는 일이 사람을 다시 모으는 일이 되었다. 면앙정은 수천 권의 책을 보관한 거대한 서고도 아니었고 국가가 운영한 교육기관도 아니었다. 시험을 치르는 곳도, 벼슬을 나누어주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마루에 한 시대의 사람들이 앉았다. 시를 읽고 차운하고 술을 마셨으리라. 조정의 소식을 이야기하고 누구의 문장이 좋은지 논했으며, 젊은 후배의 시 한 수를 놓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송순의 힘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곁에 누가 있었으며, 그 사람들이 다시 누구에게 문장을 건넸는가를 보아야 한다. 김인후는 소쇄원의 마흔여덟 풍경을 시로 남겼고, 기대승은 훗날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을 논하는 대학자가 되었다. 고경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죽었고, 정철은 「성산별곡」과 「관동별곡」,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남겨 조선 가사문학의 한 봉우리가 되었다. 임제 또한 호남 문학사의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 그들의 삶과 정치적 선택, 마지막은 서로 달랐지만 젊은 날의 어느 지점에서 그들은 송순이라는 큰 어른과 만났다.
좋은 스승은 제자의 문장을 대신 써주지 않는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앉을 자리를 내어주고 읽은 책을 건네며, 때로는 한 문장을 고쳐주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나는 면앙정의 마루도 그런 자리였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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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 풍경을 우리말로 옮기다
송순 자신도 뛰어난 문인이었다. 그의 대표작 「면앙정가」를 읽으면 정자에서 바라본 세계가 한 폭씩 펼쳐진다. 무등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제월봉으로 이어지고, 그 아래 넓은 들판과 먼 산들이 들어온다. 계절이 바뀌면서 봄의 아지랑이와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달과 겨울의 눈이 차례로 정자 앞을 지나간다. 송순은 그 풍경을 우리말의 긴 호흡으로 끌어안았다. 한문이 지식인의 중심 언어였던 시대에 그는 자신이 바라본 강호의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우리말 가사에 담았다.
송순이 열어놓은 길은 뒤에 정철에게로 이어졌다. 「면앙정가」가 있었고, 그 뒤에 「성산별곡」이 나왔다. 송순이 열어놓은 강호가사의 길을 정철의 문장이 더 멀리 밀고 나갔다. 면앙정가단은 뒤의 성산가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문학적 토양으로 평가된다.
정철은 한 명의 스승 아래에서 만들어진 문인이 아니었다. 환벽당에서 김윤제를 만났고 식영정에서 임억령을 만났으며, 김인후와 기대승에게 학문을 배우고 송순이라는 앞 세대의 문인을 만났다. 담양의 여러 정자 사이를 오가며 한 사람의 문인이 만들어졌다. 담양의 가사문학은 어느 한 천재가 홀로 만든 문학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의 문장을 읽어주면서 만들어진 문학이다. 문장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한 정자에서 다른 정자로 흘렀다.
물가에서 높은 곳으로
제1회 환벽당에서 만났던 이름들이 면앙정에서도 다시 보인다. 김인후, 임억령, 기대승, 고경명, 정철. 식영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고 소쇄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시 겹친다. 정자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사람은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말을 타고 왔을 테고 누군가는 걸어서 고개를 넘었으리라. 한 정자에서 읽은 시 한 수를 품고 다른 정자로 향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담양의 정자를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사라진다. 환벽당만으로 정철을 설명할 수 없고, 식영정만으로 「성산별곡」을 설명할 수 없으며, 소쇄원만으로 김인후의 문학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면앙정 역시 송순 한 사람의 정자로만 보면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간 길을 함께 보아야 한다.
환벽당에서 사람이 모였고, 식영정에서 시를 주고받았으며, 소쇄원에서는 한 사람의 은거가 마흔여덟 편의 시가 되었다. 그리고 면앙정에서는 그 사람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물가에서 시작된 문장이 높은 곳까지 흘러온 셈이다.
여든일곱 살 스승의 가마
1579년 면앙정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송순의 나이 여든일곱이었다. 문과에 급제한 지 예순 해가 되는 회방(回榜)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고, 오랜 세월 그와 문장을 나누었던 후배와 제자들이 다시 면앙정에 올랐다. 정철과 고경명, 임제 등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잔이 돌고 시와 이야기가 오갔으리라. 젊은 날 이 마루에서 시를 논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중년과 노년이 되어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임억령도 김인후도 없었다. 조정의 권력은 여러 차례 바뀌었고 세상은 그들이 젊었을 때와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시 스승의 정자로 왔다.
잔치가 끝날 무렵 정철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전한다. 노스승을 가마에 태워 후배와 제자들이 직접 모시자는 것이었다. 고경명과 임제 등이 함께했다. 나는 면앙정의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 장면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높은 벼슬을 지낸 노인을 사람들이 떠받든 장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문장을 나누었던 후배들이 늙은 스승을 모시고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송순은 훗날 그들에게 닥칠 정치적 운명을 알지 못했다. 몇 해 뒤 동서분당은 더욱 깊어지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십 년 뒤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고경명은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죽고, 정철은 조선 정치의 격랑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면앙정 마루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는다. 송순은 그 격랑이 가장 거세지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후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길로 갈라지기 전, 송순은 그들을 한자리에 앉혔던 앞 세대의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당파를 만드는 영수라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문장을 나눌 수 있도록 오래 마루를 지켰던 큰 어른이었다. 나는 그를 담양 정자 네트워크의 태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가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많은 자리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풍류는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나는 면앙정 난간에 기대어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오래된 나무 사이를 지나 마루로 올라왔다. 산 아래 어디선가 농기계 소리가 들렸다. 송순이 이곳에 앉았던 시절에는 소의 숨소리와 쟁기가 흙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소리는 달라졌지만 들판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오래전 영주 소수서원에서 들었던 시조가 다시 떠올랐다. ‘나 한 간, 달 한 간, 청풍 한 간.’ 그때는 자연을 사랑한 선비의 멋진 시라고만 생각했다. 면앙정에 와서 송순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조금 다르게 읽힌다. 좋은 사람에게는 빈자리가 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차지하지 않는다. 달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고 바람이 지나갈 길을 열어둔다. 후배가 앉을 마루를 내어주고, 다음 사람이 자기와 다른 문장을 쓸 수 있도록 기다린다.
그것이 내가 면앙정에서 만난 송순의 풍류였다. 면앙정에서 풍류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고, 사람을 모으는 일은 정치와도 닿아 있었다. 정치가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사람을 키우는 것도 정치다. 다음 세대가 앉을 자리를 만드는 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마루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문장이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도록 하는 것. 나는 면앙정에서 송순이 했던 정치의 한 모습을 거기서 본다.
소쇄원이 한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든 우주였다면, 면앙정은 다시 고개를 들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면앙,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든다. 정자를 내려오기 전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오래된 나무 사이에 작은 정자가 앉아 있었다.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나누었던 술잔도, 웃음소리도, 늙은 스승을 태웠던 가마도 이제 볼 수 없다.
그러나 문장은 전해졌다. 그 문장을 건네받은 사람들의 이름도 오늘까지 이어진다. 면앙정의 바람은 지금도 오래된 나무 사이를 지나 들판으로 내려간다. 달에게 한 칸을 내어주고 바람에게 또 한 칸을 내어주었던 사람처럼, 누군가 앉을 자리를 비워둔 채.
필자 최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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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치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를 역임했으며, 숭실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으며,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스페인학교' 등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동서양의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도 이끌고 있다.
월간중앙에서 「우리가 몰랐던 일본·일본인」을 연재했으며, 일본 문화와 엔카, 동아시아 인문 분야를 꾸준히 집필해왔다. 현재는 담양에 머물며 담양 정자문화와 가사문학 공간을 답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남미 여행 인문 에세이와 도시 관찰을 바탕으로 한 문학 에세이도 집필하고 있다.
최치현 damyangjourna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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