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치유의 서사, 매화나무집에 울려 퍼지다 - 글을낳는집 작가 인문학 강연 시리즈 대미…선주원 교수 ‘애도를 통한 치유’ 강연 - 임수정·이순임 작가 신작 출간기념 축하식 열려 김도균 기자 dysm.kr@daum.net

2025년 12월 25일(목) 19:45

[담양신문] 글을낳는집과 창평 매화나무집, 담양신문이 공동 주최한 ‘글을낳는집 작가들이 들려주는 열 편의 인문학 이야기’ 시리즈의 열 번째이자 마지막 강연이 25일, 100년 고택 창평 매화나무집에서 열렸다. 이번 시리즈는 지난 3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사회는 시인 고성만이 맡았으며,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손주원 교수의 강연이 진행됐다. 2부에서는 홍종의 동화작가가 사회를 맡아 이순임 작가와 임수정 작가의 출판기념 축하식이 이어졌다.

2004년부터 광주교대에서 재직 중인 선 교수는 서사와 치유, 감정적 협동과 서사적 정체성, 청소년 소설 등을 연구해 온 현대문학 전문가다. 이날 그는 ‘사별, 이혼, 실패, 가난 등으로 인한 상실과 비탄의 극복, 그리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역동적 과정’을 주제로 약 50분간 강연을 펼쳤다.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선 교수는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와 조예은의 SF 소설 『두 번째 해연』 등을 예로 들며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듣는 서사적 존재”라며 “기억과 망각의 작용 속에서 삶이 구성된다”고 강조했다.

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을 인용해 트라우마와 상실의 경험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생생하게 전했다.

애도의 세 단계

선 교수는 애도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 가지 단계를 제시했다. “첫째, 자신의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 둘째, 고통을 말로 표현하는 것. 셋째,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의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단기 목표에 집중하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을낳는집 김규성 촌장(가운데)과 임수정(왼쪽), 이순임 작가가 축하화분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출판기념 축하식과 작가의 말

2부에서는 임수정 작가의 『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이오순 평전』과 이순임 작가의 신작 소설 『럼과 라즈베리』 출판기념 축하식이 열렸다.

임수정 작가는 생애 첫 저서를 통해 민주화운동가 이오순의 삶을 조명했다. 이오순은 1980년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문익환 목사,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등과 함께 유가족협의회를 꾸려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활동했다. 임 작가는 “배은심, 박정기 등 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했던 분”이라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임 작가는 2024년 12월부터 두 달간 글을낳는집에 머물며 집필을 진행했다. 그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1920년대 농촌에서 살아온 이오순 어머니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며 집필 과정의 어려움과 의미를 전했다.

서울에서 참석한 이순임 작가는 홀로그램 표지가 인상적인 『럼과 라즈베리』를 공개했다. 인천 출신인 그는 소설집 『목성의 달』(2016), 장편소설 『녹색 목요일』(2021)에 이어 4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이 작가는 “글을낳는집에서 자연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됐다”며 “부평에서 자란 나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장애를 지닌 한 인물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서사로, 고통과 상실, 각성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제목 ‘럼과 라즈베리’는 2009년 발견된 궁수자리 B2 성운의 우주 향기에서 착안해, 기억과 사랑의 회복을 상징한다.

행사 말미에는 글을낳는집 김규성 촌장이 출판 작가들에게 축하화분을 전달하며 따뜻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100년 역사를 간직한 창평 매화나무집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상실과 치유,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메시지로 한 해를 정리하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