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신문] 글을낳는집 입주 작가들과 광주·전남 지역 작가들이 담양 군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인문학 시리즈 ‘열 편의 인문학 이야기’ 중 세 번째 행사가 지난 15일 창평 매화나무집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에서는 박태건 시인의 해석을 통해 삼국유사에 비친 익산 세계문화유산의 의미가 새롭게 재조명됐다. 또한 박 시인은 사전에 준비한 질문지 메모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청중의 의견을 청취한 후 각 키워드에 대해 해설을 덧붙이는 ‘대화형 강연’ 방식으로 진행돼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권력과 민중의 시선 차이
박 시인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가장 큰 차이를 ‘관점’이라고 강조했다. 삼국사기가 귀족 중심의 국가주의적 기록이라면, 삼국유사는 기이한 이야기와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낸 민중 중심의 역사서라는 것이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빠져 있는 ‘서동요’와 같은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수록된 것은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륵 신앙과 익산: 백제의 꿈, 민중의 신앙
익산 미륵산 자락에 위치한 미륵사는 고대 미륵 신앙의 중심지로, 서동요 설화와도 관련있는 사찰이다. 박 시인은 “미륵은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로, 당시 민중의 간절한 염원이 투영된 신앙”이라며,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지역의 미륵 사상이 어떻게 ‘구원의 신화’로 자리잡았는지를 설명했다.

서동요의 의미와 재해석: 민중이 만든 영웅 신화
현재 서동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정치적 여론전과 민중 영웅 신화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인은 “서동은 여론을 움직이고,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존재로 그려지며, 당시 민중이 바라는 이상적 영웅상을 반영한다”며 “이제는 서동요를 여성의 관점에서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패의 역사와 민중 설화의 가치
박 시인은 역사 속 ‘실패’의 가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다. 익산은 고조선 준왕을 비롯하여 실패한 역사적 인물이 찾아와 재기를 꿈꿨던 곳이라며, 백제의 멸망과 미륵사 건립, 서동요 설화는 모두 민중의 좌절과 소망, 그리고 미래를 향한 상상력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그는 “성공의 역사보다 실패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설화는 민중의 기억이자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설화와 장소성, 그리고 시간의 물레
이번 강연에서는 고대 문명의 ‘장소성’과 이야기의 시간성도 중요한 화두였다. 박 시인은 “좋은 이야기는 특정한 시간성과 장소에서 탄생하며, 그 배경을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또 ‘시간의 물레’라는 표현으로, 7세기의 이야기가 13세기 삼국유사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시대를 넘나드는 힘을 지녔음을 강조했다.

평소 글을낳는집 인문학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던 ‘인도문화유산탐방기’의 저자 김창국 전 교수는 “익산의 문화유산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박 시인의 강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는 6월 19일(목)에는 글을낳는집 작가들이 들려주는 네 번째 인문학 이야기 - 이화경 소설가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의 현주소’ 강연이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송광룡 시인(문학들 발행인)과 방희섭 아동문학가가 패널로 참여한다.